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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교회 되게 하소서! - 요 17:21~23절 해제를 中心으로 -
1. 서: 교회로 모이는 이유
그리스도인이 특정한 장소에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모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혼자 믿으면 되지 왜 굳이 같이 모이려고 할까요? 첫째, 교회의 주인이신 삼위 하나님을 더욱 잘 믿고 싶어서입니다. 혼자 믿으면 지칠 때 낙오되기 쉽고, 신앙의 길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함께 모여 같이 믿으면 서로 북돋아 주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세워줄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인의 지상명령입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역량이 현격히 딸립니다. 전도, 선교, 봉사도 함께 모여 할수록 더욱 효과적이고 특히 가난과 기아 환경문제 등 거대한 문제일수록 교인들의 연합 더 나아가 교회 간, 교파 간의 연합과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2. 하나 됨은 주님의 명령이다
이렇게 교회를 이루었을 때,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각자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까요?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당신의 유언기도에서 말씀합니다. 마지막 유언기도니까 그만큼 예수님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중심 중의 중심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 17:20). 여기서 ‘이 사람들’은 2천년 전 예수님의 제자들을 뜻하지만, 사도가 되는 사람들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이 사도들로 말미암아 믿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합니다. 다시 말하면 2천년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어 존재하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요 17:21). 주님이 우리 한 사람을 콕 집어 말씀하시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입니다.
주님은 그 밤에 많은 것을 기도하실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서 능력 있게 사역하게 해달라고, 지혜롭고 담대하게 복음 전하게 해달라고, 핍박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기도를 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들’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관계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하나 되게 하소서!” 이것이 주님이 남기신 마지막 간구입니다. 주님의 가장 간절한 소원이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하나 되게 하소서!”는 기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사실 명령입니다. 주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이 명령의 기반 위에 주님이 기도하시는 겁니다. “저들이 하나되게 하소서!”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1)교리를 놓고 내가 옳다 네가 옳다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동일하다면 본질에는 일치하되 비본질에는 관용하며, 모든 것에 사랑을 더하라는 뜻입니다. (2)교회 일 놓고 내가 옳다 네가 옳다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역과 일보다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일한다고 모여놓고 교회 안에서 싸우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어떤 명분을 들이댄다고 할지라도 형제와 불화하면서 사역하는 것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의 하나 됨을 이미 해치기 때문입니다. (3)이것이 하나님 뜻이다. 저것이 하나님 뜻이다! 하면서 싸우지 말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이 종교전쟁입니다. 종교 간에 전쟁이 붙으면 타협이 없습니다. 같은 종교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인데 그 싸움에는 휴전도 없고 종전도 없습니다. 자신이 곧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인데 이것을 어기면서 지엽적인 하나님 뜻을 붙잡고 형제와 나뉘고 교회를 깨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4)서로가 서로에게 흠잡는 말하면서 틈을 만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여 마음을 깨고, 교회의 하나님을 해치는 일은 정말 삼가해야 합니다.
3.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
기독교 신앙에서 교회가 진정으로 참된 교회가 되는데 표지가 네 개 있습니다. 하나의(one), 거룩한(holy), 보편적(universal), 사도적(apostolic) 교회입니다. 이 중에서 교회가 진정으로 참교회가 되는 첫 번째 표지가 바로 ‘하나의 교회(one church)’입니다.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주님의 기도가 이루어진 교회입니다. 여기서의 하나 됨은 개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의 성도 간의 하나 됨과 교회와 교회 간, 교파와 교파 간의 연합이라는 에큐메니컬 신앙 차원을 통칭합니다.
주님은 “하나 되게 하소서” 기도하실 때 하나 됨의 기준도 말씀하셨습니다. 21절에 보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성부, 성자 하나님은 서로 지배하거나 경쟁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권위가 앞선다고 갈등하지 않습니다. 서로 공을 다투지 않습니다. 성자는 아버지를 높이고 존경하며 성부는 성자를 기뻐합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내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합니다. 사랑 안에서 완전히 연합합니다. 삼위 하나님이 이렇게 서로 사랑하여 하나 되듯이 “너희도 다 하나가 되어 삼위 하나님 안에 있으라!” 말씀합니다. 즉 삼위 하나님이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내어주듯이 성도는 삼위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존재방식의 출발이 하나 됨입니다.
4. 하나 됨, 선교를 위한 필수
21절 중반에 보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교회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선교 즉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고, 모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이것을 보고 비로소 믿는 겁니다. “아! 세상은 분열하고 갈등하고 싸우는데, 교회는 저렇게 모여서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는 것을 보니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기는 살아계시는가 보다. 하나님이 예수를 정말 세상에 보낸 것이 맞네.” 이렇게 인정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이 교회를 다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아도 다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같이 모여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라도 세상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는지 늘 의식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교회가 말하는 것만을 듣지 않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훨씬 많이 봅니다. 그런데 교회가 ‘사랑, 사랑’ 말하는데 정작 자기들 안에는 사랑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여 갖고는 흠잡고, 나뉘고, 갈등하고, 분열하고, 다툽니다. 세상이 이런 교회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교회가 표리부동한 것 같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교회는 선교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하나 되어야 합니다.
22절에 보면 성도가 하나님께 받는 영광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영광을 왜 성도한테 주시는가?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22절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님이 우리한테 하나님 자녀가 되는 영광 주시고, 부활의 영광 주시고, 천국 가는 영광도 주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사소한 것으로 공을 다투지 말고 이미 엄청난 영광을 받았으니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5. 결: 하나 됨, 하나님 자녀의 표징
하나 됨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옳습니다. 부모가 자식들 보면서 제일 예뻐 보일 때는 서로 하나가 되어서 화목하고 사랑할 때입니다.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자식들이 부모 보는 앞에서 싸우는 겁니다. 내가 낳은 자식인데 이들이 서로 형제인 것도 잊고 싸우는 겁니다. 이때가 부모는 제일 고통스럽습니다. 다 자식인데 누구 편을 들 수도 없고…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 일 게을리하는 것 아닙니다. 사명을 게을리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 일 한다고 모여놓고는 서로 흠잡고, 서로 분열하고, 서로 다투는 겁니다. 빌 2:3절은 말씀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아무 일에든지…’ 즉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으로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성도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일한다 하면서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고, 적대하면 그는 지금 거짓말하거나 자기를 속이는 겁니다. 그건 하나님 영광 위하는 것 아닙니다. 자기 고집이고 자기 영광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훨씬 중요합니다. 과정의 진실성이 신앙의 진실성을 증명합니다. 하나님 일 하겠다고 모였으면 그 과정 자체 또한 하나님 뜻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너희가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2026년 새해에 이렇게 하나 되어 전심으로 주님을 향하고, 주님을 섬기는 새문안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