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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1) - ‘홀로’ 그 후에 ‘더불어’… (민 14:1~10)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3-09-03 오전 8:19:53
조회 460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1) - ‘홀로’ 그 후에 ‘더불어’… (민 14:1~10)

한 조각가가 정으로 열심히 대리석을 쪼아 가며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이것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조각가는 몇 주째 대리석을 계속 깎고 있었고, 드디어 멋진 대리석 사자가 탄생했다. 이를 본 아이는 감탄하며 물었다. “아저씨! 저 대리석 속에 사자가 들어있는 것을 어찌 아셨어요?” 
헨리 나우웬의 『공동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마음속에 사자가 새겨져 있으면 사자가 나오고, 마음속에 천사가 새겨져 있으면 천사가 나오고, 마음속에 악마가 새겨져 있으면 악마가 나온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새겨져 있으면 온 세상의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보이고, 그 마음속에 원수가 뿌려놓고 간 두려움의 가라지가 자라고 있으면 내 인생은 두렵고 위험한 것들로 가득 차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이끌어 가신 이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왕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명확했다.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 거기서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고 윤택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된 이들을 가나안 땅으로 바로 이끌어 가시지 않고, 광야를 거쳐 가게 하신다. 왜 그러셨을까. 왜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즉시 아름다운 공동체를 주시지 않고, 바람과 돌과 모래 언덕뿐인 광야를 거쳐 가게 하셨을까. 
광야를 지나는 시간은 이스라엘에게도 고달픈 과정이지만, 하나님으로 볼 때도 위험한 선택이다. 백성들이 이 광야 땅에서 견디기 힘들어 시험에 들 수 있고, 심지어 하나님이 이끄시는 걸음에 저항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셨을까. 광야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온전한 공동체를 만들어 행복하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선행조건이기 때문이다. 광야는 사람이 하나님을 자기 마음에 새기는 가장 좋은, 탁월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이 돼야 비로소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빚어갈 수 있다.

외로움(Loneliness)을 고독(Solitude)으로 승화시키는 곳, 광야
그런데 왜 광야여야 하는가. 광야는 외롭고 쓸쓸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광야에 서 있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 순간에 영원한 것과 다시 만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외롭고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들을 감당하지 못해 원망과 불평으로 세월을 보낸다. 후자는 이 광야의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도, 내 손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 그 순간에 하나님은 나타나신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이끌어가기 시작하신다. 
사실 하나님은 지금 나타나신 것이 아니다. 이전부터 내게 찾아오셔서 나타나셨다. 그런데 내가 다른 화려하고 내 눈에 보기에 좋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옆에 와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광야에 놓이게 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서 외로움이 고독으로 승화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광야가 필요하다.
영적으로 외로움과 고독은 서로 다른 의미이다. 외로움(loneliness)은 그냥 쓸쓸하고 외롭고 허망해 보이는 시간인 반면, 고독(solitude)은 홀로 있음 속에서 자기 진실과 대면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나 자기 안에 새겨 넣는 시간이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는 시간이다.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자기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는지를 자각하게 된다. 그래서 감격한다. 이것을 경험하게 되면, 이제 이 사람은 이 하나님의 사랑이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실 것을 강철같이 확신하게 된다. 그의 마음에 비로소 하나님이 새겨진 것이고, 이 사람이야말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공동체를 빚어내고 누리며 살 수 있는 조각이 새겨진 사람이다.

광야를 대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
오늘 본문에도 두 종류의 사람이 확연하게 갈린다. 12지파 중 12명의 정탐꾼을 선정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한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 가서 같은 상황을 보고 돌아왔는데도, 12명의 정탐꾼의 보고가 서로 완전히 달랐다. 한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땅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자고 하는데, 다른 한쪽은 그 땅 사람들은 심히 크고, 그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 같이 작아서 그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 무엇이 이렇게 현상을 보는 관점을 가르고 있는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새겨져 있느냐 없느냐가 이 둘을 완전히 가른 것이다. 
광야라는 동일한 환경 속에서, 같은 외로움과 쓸쓸함을 경험하고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그런데 한 부류만이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을 온 몸으로 체험하면서, 그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켰다. 하나님을 영혼 속에 새겨 넣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부류는 외로움 속에서 불평과 원망만 한다. 이 광야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꾸 밀어내려고만 한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자신 옆에 와 계시지만, 만나지 못하고 외면해 버린다. 결국 완고한 자아가 더 커져서 광야에서의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게 되고, 약속의 땅에서의 참된 공동체 또한 누리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홀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가나안 땅에서 공동체를 이룰 자격도 얻지 못했던 것이다.

진정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 대목은 현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우리는 애정을 주고 애정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온 세상을 배회하고 방황한다. 또한 자기 외로움을 달래주고, 잊게 해줄 사람을 찾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나 잡담을 하고, 웃고 떠든다. 하지만 홀로 있을 때에 내면에 채워진 것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공허하다. 영혼에 진정한 만족감이 없다. 그러다가 마침내 우리는 교회라는 곳에 걸음을 옮긴다. 
교회 안에는 사랑이 있고, 서로 나누고, 돌봐주며, 배려해 준다고들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교회를 찾아오는 우리 열망은 명료하다. 우리는 조직이나 사역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더불어서 함께 아름답게 사는 사귐을 원한다. 이들은 교회가 아니라 공동체(community) 즉 함께 영혼을 나누는 곳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교회를 찾아온 사람들 중 일부만 교회에 적응해서 뿌리를 내린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자신들의 애정을 채워줄 곳을 찾아 떠난다. 이유는 둘 중의 하나다. 교회 안에도 그들이 찾는 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바닥이 나버렸기 때문이거나, 이들 자신이 10명의 정탐꾼처럼 진정한 공동체를 갖기에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한국 교회는 둘 다라고 본다. 하지만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후자의 원인이 먼저라고 본다. 내가 애정을 받고 내가 사랑을 주는 공동체는 그렇게 내 앞에 어느 날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홀로 있음’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이 공동체를 가질 수 있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마음에 조각해낸 사람이, 다른 사람 속에있는 하나님을 찾아내어 교제할 수가 있고, ‘같이 있으면서’ 아이처럼 애정에 목말라하지 않고,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자라갈 수 있다. 교회는 바로 이런 곳이다. 
‘홀로 있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는 곳. 홀로 있음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주고, 그 하나님을 만나도록 안내해 주는 곳. 당신은 지금 혼자인가. 외롭고 쓸쓸한가. 그러면 당신은 광야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내 외로움을 해결할 수 없다.
교회에서도 그렇다. 교회가 내게 좋은 공동체가 되어주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모임이 옆에 와 있어도 결코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아직 하나님이 그 마음에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외로움을 고독함으로 승화시켜라. 홀로 있는 시간에 독방으로 들어가 내 옆에 와계신 하나님을 찾으라. 그분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 시작하라. 그리고 고요히 아침에 일어나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독대해 보라. 그때 내 영혼은 반드시 살아나기 시작하고, 내 얼굴은 밝아지기 시작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홀로 있는 것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자기 마음에 새겨 넣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 사람 앞에 도적같이 아름다운 만남과 공동체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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