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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신이 진정 ‘자유한 사람’ 임을 믿으십시오! (갈 5:1)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3-05-07 오전 8:03:06
조회 658

당신이 진정 ‘자유한 사람’ 임을 믿으십시오! (갈 5:1)

자유롭지만 자유하지 않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사람들은 더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의 자유는 선택의 자유를 말한다. 둘중 하나, 혹은 여러 개 중에 하나를 무엇에 통제받지 않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적으로는 불안해하고 싶지 않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외적 상황이 만만치 않지만 더욱 믿음 위에, 하나님 일에 견실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 없을 때가 많다. 외적으로는 자유하지만, 내적으로는 뭔가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5) 하고 단언했다. 그 순간의 베드로는 선택에 있어 자유했다. 스승을 끝까지 따라갈 자유도 있고, 버리고 도망할 자유도 있다. 그리고 그는 선택했다. 베드로가 했던 이 선택은 진실하고 순수했다. 그런데 막상 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 부딪쳐 보니, 내가 의지하여 선택한 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자기가 그토록 하고 싶지 않은 짓인, 닭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이 사건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결정하는 상황에서는 외적 자유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속박을 당하지 않으며, 자기 의지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그의 안에 없으면 외적 자유나 선택의 자유는 아무 힘이 없다. 내 의지가 나를 따라 줄 수 있는 능력, 즉 내적 자유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3년에 얽힌 인연 때문에 혹시 고통당할까 봐 염려한다.  
자기가 진실을 말하면 혹시 일이 꼬여버려 죽을지도 모르기에 두렵다. 그렇기에 자유하지만 자유한 대로 살 수가 없다. 이 사람 안에서 죽음이 왕 노릇하고, 이 죽음의 졸개라고 할 수 있는 고통의 두려움이 왕 노릇하는 것이다. 자유하지만 그대로 살 수가 없다. 선하게 살고 싶지만 선을 베풀며 살 수가 없다. 누가 이렇게 하는 것인가. 롬 7:17절은 말씀한다.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의지가 죄의 힘에 눌리고 찔려서 병이 들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의 문제이다.

부활의 능력을 경험할 때 진정 자유해진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불과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예루살렘 한복판에 선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예수 부활을 목청 높여 증거 한다. 대체 이 사람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가 예수 부활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을 때, 그는 여태껏 자신을 묶고 있었던 모든 것에서부터 놓임을 받았다. 죽은 자도 살려 내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순간,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능력 많으신 하나님을 경험한 순간, 내 인생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염려를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다. 전에는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의 칼 끝에서 하나님이 나를 지키실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저들의 칼이 두려워서 스스로 말한 것을 삼켜 버리고 스승까지 배반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부활의 능력을 보니 신뢰가 생겼다. 하나님이 나를 저들의 위협에서 절대적 안전으로 지키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 믿음이 그동안 나를 묶어 왔던 모든 것에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고 담대하게 한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는데 상황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자유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제 도망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예수를 전한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인가. 부활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 이것이 내 안에 묶여 있던 것들을 풀어내고 나를 해방시킨다. 진정한 복음의 능력은 부활의 능력이다. 부활의 능력이 한 사람에게 깨달아졌을 때, 그는 진짜로 자유해진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이 자유함을 주셨다. 이제는 물질이나 명예나 권력 같은 것에 속박 되지 않아도 된다. 남의 시선에 매이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를 정죄하고 자책할 이유가 없다. 갈5:1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자유는 선포나 명령이 아니다. 실제로 주님이 자기 성도들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러니 이제는 매이지 않아도 된다. 속박되지 않아도 된다. 전에는 돈과 물질에 매였다. 힘과 권력에 매였다. 하지만 예수 부활 이후에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그분이 실제 왕이고 메시야이시다. 그가 내 인생을 다스리신다. 그렇기에 그가 실제로 이끄시고 살피시고 돌보아 주신다. 이는 새로운 현실(new reality)이요, 은혜의 현실이다. 베드로는 이 현실을 예수의 부활에서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예수님이 실제로 다스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이전에 자기를 묶어냈던 것들에 더 이상 매여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본 것이다. 실제로 베드로는 이 날 아무 해도 입지 않았다. 그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때로 고초도 겪고 박해도 받지만, 할 일을 다 하고 이때로부터 30년을 더 살고, 주후 65년경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장렬하게 순교한다. 자유한 가운데 의지로 선택한 죽음이었다. 그가 악한 힘에서 실제로 놓임 받았던 것이다. 더 큰 예수의 능력이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이미 자유케 된 자로서 자유를 만끽해야 한다
물질주의 문명에서 가장 우리를 묶어놓고 있는 것이 돈이다. 이것에서 놓임 받지 못하면 신앙에 진전이 없다. 어떻게 놓임을 받는가. 물질보다 더 큰 능력이 이미 내 인생에 들어왔다는 것을 봐야 한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2). 하나님이 인생의 선물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다는 말이다. 하나님 자신이 선물로 내 인생에 오셨다. 이 분이 능력을 베푸시기 때문에 우리는 실제로 우리를 매는 것에서 자유해도 된다. 그래서 요8:36절은 말씀한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그리스도인은 실제로 자유한 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과 달리 무엇에 매일 필요가 없다. 하나님 자신이 선물이 되셔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이다. 갈 5:1절 말씀처럼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이상하게 다시 매인다. 능력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활은 믿는데 부활의 능력이 내 삶 속에 파고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 능력이 살과 피가 되지를 못한다.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마치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자유하게 되었는데, 자꾸 그 자유를 반납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게 내적인 자유의 딜레마(dilemma)이다. 참된 자유는 솔직히 위험해 보인다. 하나님 한 분 때문에 모든 것에서 풀려나 자유한 것이 멋져 보이지만 현실로 들어오면 위험해 보이고 왠지 모험 같아 보인다. 내 인생을 하나님께 걸어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나는 한번도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자꾸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광야보다 영적인 자유는 없고, 육체는 구속되지만 더 안전하고 더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갈라디아 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믿음 외에는 다른 것이 필요 없다. 다시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고 자유하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왠지 믿음 하나로 충분한 것 같지 않다. 믿음도 갖고 율법도 갖겠다는 것이다. 바울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것은 종의 멍에를 매는 것이다.”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다. 우리는 복음 더하기 알파하면 좋은 것이라 보는데, 그것은 사실 알파에 종 노릇하는 것이다. 복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알파를 끌어왔으니까 이 알파를 떨쳐 낼 수가 없다. 결국 여기에 매이는 것이다. 종노릇 하는 것이다. 하나님 한 분 외에 끌어온 것을 조심해야 한다. 거기에 다시 종노릇하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오직 복음의 능력을 확신해야 한다. 그래서 나를 묶고 있고 얽매고 있는 것들에서 이미 자유케 된 자로서 이 자유를 만끽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이 자유를 이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이 자유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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