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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기를 힘써, 생명이 충만한 교회가 되게 하소서! (행 2: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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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이기에 힘써 생명이 충만한 교회(행2:43~47)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3-01-01 오전 10:18:06
조회 635

모이기에 힘써 생명이 충만한 교회(행2:43~47)

비대면예배와 교제의 위기

코로나 팬데믹은 불과 3년이 못되는 짧은 기간에 인류의 모든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가정에서부터 직장, 그리고 국가공동체에 흐르는 문화 자체를 근본에서 바꾸어 놓았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비대면 접촉이 일상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비대면 접촉은 교회의 삶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소그룹 모임에서부터, 양육훈련, 그리고 예배에 이르기까지 비대면 온라인 사역이 전면화되었다. 특히, 예배당에 직접 나가 예배를 드리던 신앙생활에서, 온라인과 현장예배를 병행하는 “올라인”(All Line) 예배가 일상으로 정착 되었다. 분명히, 온라인 디지털 네크워크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교회가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성도의 영성이 시들지 않고 유지되며 성장하는게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온라인 디지털 네크워크 또한 성령의 도구라는 사실은 절대로 부인 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 팬데믹이 서서히 물러가고, 코로나가 지역 풍토병으로 자리잡아가는 시점에서, 우리는 서서히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사역과 예배에 대해 성찰해 볼 때가 되었다. 성경공부나 모임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것은, 그동안 공간과 시간의 한계로 인해 양육훈련에 참여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폭넓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계속적으로 유지하며 권장해 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그룹 예배는 어떠한가? 코로나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온라인 예배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온라인 예배는 응급수단이요 긴급수단이지 평상시에 일상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숨이 넘어가는 환자에게 끼었던 인공호흡기를 위기를 넘긴 상황에서도 계속 끼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온라인 예배는 현장예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성령께서 허락하신 응급처치용이지 이 자체가 일상적, 평상적 예배 행위일 수는 없다. 만일, 교회의 예배가 온라인으로 그것도 각자가 접속 가능한 시간에 드리는 예배로 충분하다고 여겼다면, 초대교회 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암흑 같은 카타쿰에 모여 예배드리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각자 자기 집에서, 비밀스럽게 전해 받은 예배순서지와 사도들의 설교문을 읽는 것으로 예배를 대신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함께 모이려 했고, 함께 찬송하고 예배하려 했고, 더불어 삶을 나누려 했다. 왜 그랬을까? 함께 모여 예배하며, 함께 모여 사역할 때는 고립되어 있을 때 알 수 없는 고유하고 독특한 기독교적 삶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바로 공동체 신앙이다!

교제의 세가지 측면

사도행전 2장과 5장에 보면, 초대교회가 어떻게 모이기를 힘썼는지, 그들에게는 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모이는 것이 중요했는지가 드러난다. 행 2:42절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교제”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koinonia)라고 한다. “함께 공동의 무엇에 참여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코이노니아 혹은 교제라 할 때는 크게 세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첫째,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만나고, 사귀고, 동행하는 삶을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한다. 수직적 차원의 교제이다. 성도의 예배는 이 수직적 차원의 교제를 포함하고 있다.

둘째, 성도간의 교제이다. 한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로서 서로 형제/자매간의 영적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이 교제를 통해 내면의 고통과 인생의 무게감을 서로 나누게 되고, 이를 놓고 기도해 주게 되어 서로의 영적 성장과 성숙을 돕게 된다. 인간은 자기 안의 아픔과 고통을 누군가와 나누게 될 때 그 영혼이 정직해지게 되며, 이때 자유함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사람은 신비롭게도 이 나눔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된다.

셋째, 물질의 교제이다. 두번째 교제가 성도간의 사귐의 정신적, 신앙적 차원이라면, 물질의 교제를 성도간에 물질의 나눔을 통해 실질적인 삶의 짐을 나눠지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이 물질의 교제를 성도의 교제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으로 고백하고 실천했다. 구원이 영혼과 육체의 전인적 구원이듯이, 교제도 영적, 정신적 차원과 물질적/실질적 차원을 함께 갖고 있다. 사도행전은“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고 증언한다(행2:44~45). 그 누구도 형제 자매간에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행4:32). 신앙공동체는 단순히 신앙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로 한가족 공동체의 식구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성도의 교제가운데 존재하시는 그리스도

이것이 본래 교회이다!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몸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그리고,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핵심이 “교제”이다. 그래서 독일의 신학자이자 순교자 본회퍼는 “그리스도는 성도의 사귐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는 오늘날에도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데, 그 분은 성도의 사귐을 통해서 우리 안에 존재하신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진정 그리스도를 알고, 경험하고, 그 분을 체험하여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성도의 교제(사귐) 안으로 들어
와야 한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이 점점 기독교 신앙의 진면목인 이 성도의 코이노니아를 상실해 가고 있는데, 이번의 코로나는 이 경향성에 직격탄을 날려 버렸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며, 나눔과 사귐 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은혜를 새롭게 경험해야 할 것이다.
2023년 새해에 새문안교회는 대예배에서부터, 작은 사역모임, 그리고 구역 소그룹에 이르기까지 함께 모이고, 더불어 사귀어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 생명이 충만한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다양한 대그룹과 소그룹 역동이 일어나는 방안을 활성화시켜 주어, 새문안교회 전체가 왕성한 모임과 역동성으로 충만한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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