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 교회 표어
모이기를 힘써, 생명이 충만한 교회가 되게 하소서! (행 2:46-47)

담임목사

HOME 담임목사 새문안강단
  • 담임목사 소개
  • 설교
  • 성경묵상ㆍ강해설교
  • 특별설교
  • 새문안강단

새문안강단

제목 모이기를 힘써, 생명이 충만한 교회되게 하소서! (행 2:43~47)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3-02-05 오전 8:21:42
조회 609

모이기를 힘써, 생명이 충만한 교회되게 하소서! (행 2:43~47)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
2020년 2월, 광풍처럼 밀어닥친 코로나 팬데믹은 교회에 본질적인 질문 하나를 던졌다. “정말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즉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었다. 교회의 본질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교회는 하나님 한 분으로 충분한가? 아니다. 삼위 하나님은 교회의 본질이지, 교회의 정체성은 아니다. 이것이 없으면 생명 자체가 유지되지 못하는 것을 ‘본질’이라고 한다면, ‘정체성’은 그 유기체가 살아서 생명이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힘을 말한다. 지난 3년간 온라인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성도들이 가장 혼선을 가진 부분이 이것이다. 교회의 본질을 교회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성도들 중의 어떤 분은 첫째 주일은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나머지 세 번의 주일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고 봉헌생활을 한다고 한다. 또 어떤 분들은 직장생활이 바쁠 때는 집에서 예배드리고, 바쁜 시간이 좀 지나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이들은 집에서든 교회에서든 철저히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 생명의 호흡을 공급받는다. 교회의 본질에 닿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를 이렇게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순간, 그는 교회의 정체성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미 교회이니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교회의 생태계는 급속히 약화될 것이요, 하나님 나라는 후퇴하기 시작할 것이다. 교회의 교회됨을 지금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첫 번째 정체성
사도행전 2장에서는 오순절 날에 성령이 강한 바람처럼 임하고 불처럼 내려와 한 공동체의 심령을 장악한다. 그때 사람들은 방언을 하고 회개를 했다. 하루에 세례 받는 사람의 숫자도 삼천이나 되었다. 그리고 이때, 교회의 정체성이 명료하게 가시화되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말씀 배우기에 힘쓰고, 믿는 사람이 자기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고, 집에서 떡을 떼며 교제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다. 이 사건은 성령이 각 심령에 임했을 때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 일, 또한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임인 교회에 당연히 일어나야 하고 또 일어날 수 있는 대사건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보면 교회가 진정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가진 교회가 될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세 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교회는 ‘모이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교회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 모이는 데서 시작된다. ‘교회’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인데, 어원이 ‘~로 부터’의 뜻을 가진 ‘ek’와 ‘불러 모으다’라는 뜻의 ‘cleo’의 합성어이다. 즉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불러 모아진 자들이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행2:46). 여기서 성전은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회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 성전이다. 아직 구약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제사장들이 예배를 집례하고, 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 모여 예배하는 곳! 그곳에 이들은 함께 모였다.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면 이전 것은 벗어던져 버리기 마련인데,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는데도 굳이 그 새사람 된 사람들이 성전으로 간다. 이것은 아직 신약적 예배의식이 만들어지기 전이니 구약으로 예배드릴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더 중요한 뜻이 있다.

하나님 가족이라는 자의식과 연대감
지금 예수의 부활을 믿고 거듭난 사람들 안에는 전혀 새로운 의식이 싹터 있다. 자신들이 바로 ‘새 이스라엘’이요, ‘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식이다. 구약을 믿는 저들은 옛 이스라엘, 육신의 이스라엘이라면 메시야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신들은 “진정으로 새 이스라엘이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다!”라는 자의식이다. 진정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그분의 자녀들이라는 의식이다. 하나님의 가족의식이다.

하나님 백성은 당연히 모여서 예배하고, 그렇게 모여서 하나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구약 시대부터 이미 하나님 백성의 특징 중의 특징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평상시에는 세상에 흩어져서 생명의 씨앗으로 살아가지만, 일정한 시간에는 일정한 장소에 모여서 당신을 예배하도록 명령하셨다. 평상시에는 지역의 성소에서 모여 예배한다. 하지만 적어도 일 년에 세 번 즉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은 반드시 예루살렘 중앙성소에 모여 백성 전체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루살렘 중앙 성소에서 예배하는 것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길 정도로 예루살렘에서 모이는 것을 자기 정체성으로 여겼다.

사도행전 2장에서 새 이스라엘이 옛 것으로 싸여있는 헤롯성전에 모인 것은, 이 구약의 하나님 백성의식이 그대로 신약의 새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아직 자신들에게 예배모범도 없고 설교자도 없지만, 성전에 같이 모여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손을 잡고 같이 있는 것이다. 교회의 정체성에서 모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그 로마의 서슬 퍼런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이들은 카타콤에 목숨을 걸고 모여서 함께 예배했다.

당신은 하나님 백성인가? 새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자녀인가?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모여야 한다. 이 모이는 것이 교회의 정체성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히브리서 10장 25절은 말씀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폐하는 것, 그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이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도 있었다. 모이는 것은 자기부정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다. 반면에 안 모이면 편하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모이는 것을 강조하시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렇게까지 죽을 각오를 하고 모이려고 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생명이 충만한 인생을 사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설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함께 모인다. 모이기 위해서 5~6시간 운전을 하면서도 기를 쓰고 모인다. 그래서 함께 부모님께 세배를 하고, 같이 떡국을 먹고, 타향살이하면서 갖는 희로애락을 나눈다. 물론 그러다가 정치얘기가 나와서 서로 싸움이 붙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인다.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족의 정체성이다. 한 부모의 피를 물려받은 형제자매라는 의식이 여기서 분명하게 유지된다
.
하나님 아버지 품에 모이는 것이 이와 같다. 그래서 제사 때마다 지방 성소에서 모이고, 일 년에 세 번은 전 이스라엘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모이게 해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가족의식과 연대의식과 소속감을 철저히 갖고 살게 하는 것이다. 과거 코로나 팬데믹에 한국 교회가 모이지 않기로 결단했던 이유는 교회가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며 불안해하는 시민들을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분명 선교적인 이유에서였다. 하나님께서 이런 한국 교회의 결단을 기쁘게 받으셔서 코로나속에서도 교회들을 지켜주셨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가 물러가고 있다. 광야에서 비상식량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던 때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만나와 메추라기는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계속 그것을 바라면서 온라인 앞에 앉아 있으면,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
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족의식을 갖지 않고 개체로 하나님을 믿겠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기도하기는 2023년에는 새문안교회 성도들 모두가 온라인의 방주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온라인 광야에서 떨어지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지 말고, 약속의 땅 가나안의 들로 옷 입고 걸어 나와 형제자매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땀 흘려 영적 양식을 공급받는 새 은혜가 임하기를 바란다.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