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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떻게 볼 것인가?’가 방향성을 결정한다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1-08-01 오전 10:15:52
조회 1001

코로나 시대의 목회 방향에 대한 성찰 (1)1)
‘어떻게 볼 것인가?’가 방향성을 결정한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우리가 즐겨 쓰는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말은 코로나를 통해 경험하는 이 현실을 가장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표현이라 할 것이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은 지나가고 ‘새로운 일상’(new normal)이 도래했다는 뜻이다. 모든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대면적 인간관계가 특수한 상황으로 인식되고, 일시적이고 잠정적이라 여겼던 비대면적 만남과 관계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결국, 코로나 시대의 목회돌봄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이 비대면적 만남의 상황에서 어떻게 목회돌봄을 할 것인가와 연결된다 하겠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가 가져다 준 새로운 일상으로서의 비대면적 만남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코로나가 한국교회에 던진 메시지를 살펴보겠다. 이를 통해,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에서의 목회돌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우선
질병 때문에 내원한 환자를 돌봄에 있어 최우선의 과제는 그 병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정확한 진단이 바른 처방을 가져오고, 바른 처방이 온전한 치유와 회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바른 진단이 결여된 의사의 진정성과 열심은 치유는 커녕 오히려 환자를 더욱 극악한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된다. 이는 개인에서나 교회 공동체에서나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목회돌봄의 최우선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성도의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극복해야 하는 현재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진단해 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코로나라는 이 희대의 전염병적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며, 어떤 방식으로 해석할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상황이해를 뛰어 넘어 코로나에서의 목회적 돌봄의 큰 방향을 결정한다 할 수 있다.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팬데믹이 초래된 원인에 대한 해석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목회현장에서 두 가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팬데믹의 원인을 신학적으로 풀 것인가? 현상학적으로 풀것인가?’ 물론, 적어도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가 어떤 현상에 대해 해석할 때 그의 해석은 기본적으로 신앙적이고 신학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신학적이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여기서, 재앙과 질병의 원인을 신학적으로 푼다는 말은, 재앙과 질병의 원인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도권에 의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주체가 되셔서 이 질병을 주셨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현상학적으로 푼다는 말은, 현상의 선험적 판단에 의한 신학적 해석을 우선 배제하고, 지금의 팬데믹 현상을 현상 그 자체로 받아들인 뒤, 이를 어떻게 신앙적으로 건설적으로 극복해 나갈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위협신학’의 한계와 위험성
먼저, 신학적 접근이라 함은 이 전염병을 하나님의 징벌적 성격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접근은 모세오경(esp. 신명기)과 구약의 예언서 신앙에서 유래한 것인데, 고대교회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진, 기근, 홍수, 전염병 등 재앙이 닥친 공동체에 어김없이 적용되어 왔다. 한국교회에서도 작년 코로나 발생 이후, 많은 교회들의 강단설교는 이런 신학적 접근을 통해 문제를 다루려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는 목회돌봄에 있어, 목회자가 가장 쉽고 간단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다. 성도에게 이 전염병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징벌로 초래된 것이니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흔히, 재앙적 상황에서 성도에게 죄악에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은 거부감을 일으키기 보다는 쉽게 받아들여진다.2) 재앙적 상황에 있는 인간에게는 생존여부와 관련된 두려움이 증폭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받아낸 회개는 진정성 있는 인격적 수긍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소위 ‘위협신학(threatening theology)’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의 원인이 제거되는 순간 회개의 진정성도 끝나 버리게 된다는데 있다. 모든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을 향해 존재전체가 회심하여 돌아서는 것이다. 그리고, 회심의 동기 자체는 내면의 어떤 심리적 부조화나 두려움이나 공포심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과의 만남에서 온다. 모든 회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재앙을 옆에 끼고 선포되는 회개에의 촉구는 하나님 자신을 향해 돌아서게 하기 보다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떤 기능적 결단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 그만큼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회개는 참된 회개가 아니라 기능적 회개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두려움의 원인이 제거되는 순간 참회자(懺悔者)는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기 쉽다. 결국, 이렇게 되면 그는 이 재앙적 상황에서 아무 소중한 교훈도 얻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위기의 상황에서 아무 교훈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참된 돌봄이 이루어 졌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여기에, 필자는 전통적회개 촉구 등, 협신학(threatening theology)의 한계와 위험성이 내재한다고 본다.
더욱이 이런 신학적 접근은 이번의 재앙에 대해 현대과학이 밝혀낸 사실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현재까지 이번의 코로나 상황은 인간의 무질서하고 탐욕적인 자연파괴에 따른 자연의 역공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즉, 과학은 현상황이 하나님의 주도에 의한 처벌적 상황이 아니라,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빚은 반작용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 성찰을 도외시한 채, 죄에 대한 회개를 일방적으로 촉구하는 신학적 진단은 설득력이 없다.3)
따라서, 이 전염병적 상황은 신학적 접근보다는, 현상학적으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펼쳐보여주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바른 목회돌봄의 시작이라 본다. 코로나19는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파괴에 따라 전염균이 문명에 전이되면서 비롯된 것이므로, 현재적 재앙을 인간의 탐욕에 따른 보응으로 이해하는 것이 목회적 돌봄의 시작이다. 이는 코로나 상황에 대한 몇 가지 소명제를 갖고 오게 된다. (1) 현재의 재앙을 하나님이 주체가 되셔서 인간에게 징벌로 주셨다는 맹목적 신앙(blind faith)을 거부한다.4) (2)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서의 과학(의학)을 신뢰한다. (3) 재앙적 상황일수록 교회의 신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회와 소통이 가능한 합리적, 이성적, 윤리적 신앙이어야 한다. (4) 교회는 사회공동체의 탄식에 공감하여 섬김과 배려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네 가지 원칙은 코로나에 대처하는 성도 개인뿐만 아니라, 방역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교회가 사회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하는 목회적 원칙이라 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1) 이 원고는 2021년 <목회상담학회&목회상담협회> 춘계학술발표회에 주제발표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총 3회로 나눠 게재할 예정입니다.
2) 이 접근은 재앙의 원인자가 하나님이라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전능성을 방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더욱 목회자가 선택하고 싶은 접근이기도 하다.
3) 사실 코로나 상황은 인간의 하나님 자신에 대한 범죄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범죄의 결과이기에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회개해야 하는 상황인 것은 맞다.
4)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2020년 초 32%에서 2021년 1월 21%로 나타나, 1년 만에 무려 11%가 급감했다 (지용근, 목회데이터 연구소 자료 참조). 이렇게 급격한 사회신뢰도의 추락의 주된 원인은 이 전염병적 상황을 과도하게 신학적으로 판독하려 한 일부의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오류에서 기인한다. 반면에, 종교개혁자 루터가 흑사병에 대처하면서 보여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은 개신교의 전염병 대처방식에 좋은 실례가 된다. 박경수, “흑사병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태도”, <재난과 교회>,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2020년)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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