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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여, 우리를 깊은 데로 높은 데로 이끄소서(사 7:11, 눅 5:4)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21-01-10 오전 10:17:25
조회 828

주여, 우리를 깊은 데로 높은 데로 이끄소서(사 7:11, 눅 5:4)

닉 러브그로브라는 미국의 자기계발학자가 쓴 『스워브』라는 책이 있습니다. 스워브란 럭비나 하키에서 많이 쓰이는 스포츠 용어입니다. 곡선으로 뛰거나 몸을 좌우로 틀면서 앞으로 나가 상대방을 제치는 기술입니다. 저자는 스포츠 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한 우물만 파다가는 하나밖에 모르는 바보가 되지만, 다양한 방면의 지식과 경험을 쌓으며 곡선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넓은 안목을 익히게 되어, 복잡다단한 현대의 삶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폭과 넓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어떠할까요? 신앙의 세계는 넓이를 추구하기보다는 깊이를 추구합니다. 평지에서의 쉬운 길보다 험한 산길을 오르는 것을 택합니다. 깊은 곳에 생명의 샘물이 있으며 높은 곳으로부터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의 은총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사 7:11) 라고 말하여, 적어도 그것이 신앙과 관련된 것에서는 깊이와 높이가 폭과 넓이보다 더욱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깊이와 높이는 생명을 살리는 길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친구들이 지붕을 뜯어 위에서 아래로 중풍병자를 내려서 예수님 앞에 대령시켰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2:5). 지금 중풍병자는 말할 것 없고 그를 메고온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육체의 질병입니다. 육신이 중풍병에서 치유되어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중풍 병자의 질병은 언급도 하지 않으시고 그의 병든 몸 앞에서 선포합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님은 보이는 육신의 질병보다 보이지 않지만 더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한 존재의 영혼과 몸을 곤경에 몰아넣은 그의 본질적 문제, 즉 ‘죄의 문제’를 주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의 문제를 들춰내셨습니다.
사건은 그 뒤에 일어났습니다. 마가복음 2장 6~7절에 보면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나옵니다. 예수님의 대적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가지신 권위를 침범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병을 그 뿌리가 되는 곳에서부터 다루신 것 때문에 이제부터 그의 대적자들과 불편한 관계를 갖게 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죄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그냥 선포만 하셔도 충분합니다. “소자에게 있는 중풍병아 물러가라!” 겉으로 보이는 육체의 병을 낫게 하시는 것으로 대략 마무리하셨으면 갈등이 없었을텐데, 그 불쌍한 병자의 병의 근본을 만져주신것 때문에 주변에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과 불필요한 갈등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주님으로 모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길입니다.
그분은 영적 중풍병에 걸려 있는 자기 백성의상처 표면을 살짝 만지시고 그의 기분을 행복하게 전환시켜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속에 고름이 차 있으면 환자가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을 짜내십니다. 설사 자신이 오해를 받더라도 환자 살리는 일에 온전히 마음이 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냥 대충 고치셨다가 나중에 더 큰 일이 날까 하여, 당신이 욕을 먹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은 인간 영혼의 깊은 부분을 다루셔서 사람을 살리는 것에 집중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으로 모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섬기는 방법입니다.
생명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힘은 깊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 하셨습니다. 은혜
가 흘러넘치는 원천은 높이에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깊이와 높이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표피적인 차원에서 멈추려고 하며 얕은 은혜의 물가에 머무르려고 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곳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해양의 깊은 곳과 험산의 높은 곳은 안전하지 않고 위험합니다. 그곳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많지 않다고들 말합니다. 둘째, 깊이와 높이를 추구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식도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듯이 신앙의 세계도 인스턴트 음식같이 즉각적인 맛을 얻는 은혜에 멈춥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분주한 발걸음을 멈추어 서게 만든 이 코로나 전염병 사태는 깊이와 높이를 추구할 기회를 줍니다. 2021년은 말씀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 깊은 영혼의 샘물을 길어 올리며, 기도의 높은 세계로 나아가 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의 보좌를 흔드는 은혜가 임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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