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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 기르기 -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
작성자 관리자(jjhjjh) 등록일자 2018-12-02 오전 8:22:46
조회 1632

한국 사람의 특성 중 하나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다. 재주가 많으나 적으나, 있으면 부려야 하고 힘이 있으면 써야 한다. 그만큼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도 작은 힘이나마 모아서 여러 가지 일들을 열심히 하는 교포들을 많이 보았다. 크고 작은 사회봉사 단체들이 어디든지 있으며, 우리 공동체의 규모와 상관없이 정성을 들여 일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우리가 할 것은,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사람 키우는 일’이라 확신한다. 시절이 어지럽고 비전이 흐릿해질 때는 그 결과로, 사회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백성들의 삶은 갈팡질팡했다. 사사시대가 그런 때였다. 그래서 사사기 21장 마지막 절에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1:25)고 한다. 왕 즉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줄 모르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누가 말해주지도 않으며, 그저 자기의 본능과 감각과 뜻에 맞는 대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혼란이요, 공동체가 서서히 밑에서부터 가라앉게 된다.

그 때 하나님은 제일 먼저 무엇을 하셨는가? 하나님은 먼저 지도자감을 찾아 나섰다.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각자 자기가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다 보면, 자연히 경쟁에서 탈락하여 가난한 사람도 많아지고 소외된 사람도 많아진다. 우리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먼저 하나님은 이들을 긍휼히 여기셔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적 수순은 ‘빈민구제’가 우선이 아니라 빈민을 구제할 ‘지도자 세우기’를 먼저 하셨다. 빈민구제도 중요하나 그것은 겉의 병을 치유하는 것일 뿐이요 병을 뿌리에서 치유하는 것은, 그 병을 들게 한 사람을 갈아치우고, 병 고칠 사람을 세우시는 것이었다.

애굽에서 부르짖는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모세를 보내시고, 엘리 제사장의 무능력한 영적 지도력을 대체하여 사무엘을 보내시고, 사울의 폭정에 시달린 백성들을 위해 다윗을 보내셨다.

사무엘은 중앙의 예언운동에서 은퇴하고 난 뒤, 자기 고향 땅 라마나욧으로 내려가 거기서 자기 후학들을 길러 나중에, 그 중에서 정치 지도자로 다윗이 나왔을 뿐 아니라 그 맥이 이어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등 이스라엘의 위대한 예언자 운동의 전통을 이루어 내었다.

하나님은 어지럽혀진 집(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치우는데 시간과 정력을 쓰시기 전에, 집을 어지럽힌 사람을 갈아치우고, 집을 질서정연하게 정돈할 사람을 세우는 일부터 시작하셨다.

본회퍼라는 신학자는 히틀러에 저항하는 운동에 가담하면서 말했다. “여태까지 2천 년간 교회는, 광장에서 미친 운전사가 모는 버스에 치여 죽은 사람들 장례지내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써왔다. 그러나 이제부터 교회는, 미친 운전사를 버스에서 끌어 내리고, 정신 차린 운전사를 그 자리에 앉혀 광장이 안식과 평안의 장소가 되게 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나는 단연코, 후미지고 상처받은 곳을 섬기는 것도 중요하거니와 더욱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상처를 치유하고, 이런 상처가 생기지 않고 살만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사람과 지도자를 키우는 일이 더욱 본질적으로 중요함을 굳게 믿는다. 지금 우리가 시작하는 교육사역은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일하는 것이라 믿는다.

처음부터 쉬운 것이 없고 완전하게 마스터 플랜을 갖고 일이 시작되는 경우는 더욱 없다. 만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100% 준비되어 확실할 때까지 기다린다면, 이미 때는 놓쳐 버리고 세월은 지나버리고 만다. 하나님의 운동은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서 먼저 실천하고, 그 뒤에 그 실천을 놓고 말씀과 기도로 반성하며, 그 반성 위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실천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운동이다.

사람 키우는 일에 참여하기를 독려하는 것은 오늘날의 문화 코드와 잘 맞아 떨어지는 일이 아니다. 감각적으로 구미에 와닿는 것을 더 좋아하고, 당장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피부에 와닿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사는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시대의 풍조만을 좇아가는 것으로는 얄팍한 분위기 몰이꾼은 나올 수 있으나, 이 백성의 눈물을 닦아줄 지도자는 길러낼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감사하게도 이 일에 나선 외로울 것 같은 동지들을 위해, 선각자 도산 선생이 주신 말씀이 있다. “진리는 따르는 사람이 있고, 의는 이루는 날이 있다.” 또 바알 문화의 코드를 거슬러 하나님의 말씀의 날을 세워 길을 가다 지친 엘리야에게 주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의 용사를 너를 위해 남겨 두었다.”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세상의 희망은 교회와 교회가 길러내는 사람에게만 있다는 확신이 점점 굳어진다. 지난 십여 년간을 우리는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정부를 세워보았다. 진보에서 보수로 다시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이 바뀌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이 땅의 산적한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하여 백성들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케 해주는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 실력이 있는 사람들인가 싶더니 자기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일을 하는가 하면, 순수한 동기를 가졌다 싶더니 국가를 경영할 실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사람들임이 곧 확인되곤 한다. 결국은 인물의 문제였다! 오늘날 한국사회 공동체의 위기는 인물이 나지 않은데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 특히 새문안의 여섯 번째 성전시대는 민족과 역사를 구원할 인물을 키워내는 일에 큰 진보가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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